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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관내 태실 3개소 실존 확인태실은 생명존중의 좋은 예 ... 보호와 보존, 관리 시급해
태실의 구조

경기도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문화재연구원과 함께 지난 2019년부터 3년간 도내 조선 왕실의 태봉(胎峰)과 태실(胎室)에 대한 문헌 분석, 현장확인 등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65개소의 태실을 확인했다고 밝혀 태실과 태봉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포시가 (재)고려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에  '김포시 소재 태실 학술조사 용역'을 의뢰한 결과 김포 관내에 3개소의 태실이 실존한다는 최종 조사보고서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한 뒤 길지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태반과 탯줄)를 땅에 묻고 조성한 시설로, 무덤과 비슷해 태묘, 태실묘, 태실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봉은 태실이 조성된 산봉우리다.

태실을 조성한 것은 아기의 새영선과 근원을 '태'로 보아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를 골라 태실을 조성했다. 

태실이 조성되는 태봉은 들판 가운데 홀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로, 이는 정상에 있는 태실이 아래의 산 전체와 한 몸이 되어 외관상 거대한 태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왕은 27명으로 부인은 총 117명이고 여기서 태어난 자녀는 아들 127명, 딸 108명으로 모두 235명이다. 

이 중 현존하는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은 모두 143개소로, 경기·강원·충청·전라·경상 황해도에서 확인되고 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김포시 소재 태실의 존재유무가 기록되어 있는 고서는 없지만 각종 고지도에는 김포 지역 내의 태봉이 표기되어 있어 태실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원은 월곶면에는 고막리와 조강리에 태봉산이 있으며 태를 건드리면 집안이 망하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소개했다.

연구원은 전주이씨대종회가 1999년 발간한 <조선의 태실>에서 김포시에는 총 6개소의 태실 및 태봉에 대한 내용이 있으며, 이 중 실체를 확인한 태실은 월곶면 고막리 신성군 태실, 월곶면 조강리 인순공주 태실, 월곶면 고양리 고양리 태실 등 모두 3곳이라고 확인했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0년에 발행한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에서 김포시 소재 3개소의 태실을 확인, 각각의 태실을 위치한 지역명을 따라 조강리 태실, 고막리 태실, 고양리 태실로 명칭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조사중 태실비의 명문을 판독한 결과 조강리 태실은 인순공주 태실, 고막리 태실은 신성군 태실로 확인했고 고양리 태실은 태실비의 명문이 훼손되어 태주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조강리·고막리·고양리 태실

◎ 조강리 태실
소재지 : 김포시 월곶면 조강1리 산 58-4
태   주 : 인순공주(부=중종, 모=문정왕후)

조강리 태봉 훼손 전(좌)과 후(우) 모습
조강리 태실 및 태함

인순공주 태실은 조강저수지 서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몇 년 전 태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개발 및 재해예방공사로 태실이 유실될 위기에 있어 2015년 9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태실비의 후면에 기록된 태실을 조성한 연도가 1544년(중종39)으로 인순공주의 태실로 확인됐다. 인순공주(1542년~1545년)는 중종과 문정왕후의 4녀이며 무덤은 서삼릉에 있다.

◎ 고막리 태실
소재지 :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212번지
태   주 : 신성군(부=선조, 모=인빈김씨)

고막리 태봉 및 태실 전경

고막리 태실은 문수산의 남쪽 능선과 연결된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태실비의 명문에는 처음 태실을 조성한 시기는 1584년 7월 25일이며 1612년에 개립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성군(1579년~1592년)은 선조와 인빈김씨의 소생으로 시호는 충정, 사후 선조의 의주 피난시에 동행인들에게 주어진 호성공신 2등에 포상되었다. 묘는 순강원에 있다.

◎ 고양리 태실
소재지 :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산27-1번지
태   주 : 불명

고양리 태실 추정지

고양리 태실은 오봉산의 서쪽 능선과 연결된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태실이 위치한 정상부는 현재 군용시설물로 사용된 후 폐기된 흔적만이 남아 있다. 군용시설물은 태실이 위치했을 곳으로 추정되는 중심부에 있어 현재 태함 및 태실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태실은 생명존중의 좋은 예...보호와 보존 필요 

태를 묻는 안태문화는 생명의 근원이라 할 '태'를 선조들은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태실 내에 있는 유물들이 도굴을 당하고 관리에도 소홀해 현재 많은 태실이 훼손되었다.

김포시 소재 태실 학술조사 용역을 진행한 (재)고려문화재연구원은 "생명 탄생과 관련된 '태'를 귀하게 여기고 이를 보존하는 탄생의 문화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얼마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며 김포 소재 태실의 관리를 위해 ▲원위치에 원형복원해 보존하는 방식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지역 또는 마을공동체 내에 이전 보호하는 방식 ▲공공시설로 이전해 관리하는 방식 등 세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특히 연구원은 조강리 태실은 태봉이 훼손되어 현재 남은 것은 태실비와 태함 개석의 일부이지만 태실비의 상태가 양호해 비문의 판독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태주의 신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충분하고, 고막리 태실은 고지도 상에 그 존재가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고 비석의 명문도 뚜렷해 복원을 위한 문화재 조사와 더불어 보호 관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양리 태실의 경우 어떠한 시설도 확인할 수 없지만 이전 조사에서 태실비와 관련한 조사내용이 있고 태실비의 위치를 특정할 수있어 추후 태실비를 찾기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경기도, 태실 보존대책과 발굴작업 추진 계획 밝혀

경기도는 2019년부터 태실과 태봉의 실태조사를 추진해 왔다. 문헌 기록 확인, 역사 자료 분석, 현장 확인 등을 거쳐 도내 19개 시·군에서 태봉 30개소와 태실 35개소를 확인했다. 

도는 태봉·태실 65개소에 대한 문헌 자료, 전문가 소장 자료, 조사원들이 직접 수집한 태봉·태실 사진 등이 수록된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제1장 태실·태봉 조사의 배경과 과정, 제2장 신라시대와 고려·조선시대의 태실 조성 현황과 특징, 입지 특성, 아기태실과 가봉태실(아기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른 후 추가로 석물을 올려 치장)의 석구조물과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 자료, 제3장 19개 시·군에서 확인된 태봉·태실의 조사 결과(경기도 최초 발굴 사례인 광주 원당리 태실 내용 포함) 등으로 구성됐다.

또 태실 보존을 위해 힘써 온 도민들의 노력과 관련 자료도 보고서에 담았다. 양평 대흥리 태실이 도굴당한 1972년 3월 2일, 당시 태지석(태의 주인공 이름과 출생일을 기록한 돌) 명문을 옮겨 적은 이희원(83,양평 백안리) 씨의 일기장은 대흥리 태실이 조선 성종의 왕자 부수(富壽)의 태실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또 훼손된 포천 성동리 익종 태실과 포천 금주리 태실의 실물 보존을 위해 노력해 온 이응수(67,포천 양문리) 씨의 이야기도 담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태실 유적에 대한 보존대책을 세워 안내판과 울타리를 설치하는 한편 지속적인 발굴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종훈 기자  gbsi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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