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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아니면 누리지 못했을 소중한 기쁨

많은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보다 정신적 사회 관계적 손실은 더 치명적이고 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측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유로운 활동의 제약과 그 관계의 벽으로 인한 심한 고립과 분리를 경험하면서 이로 인해 남긴 상처와 장애는 이미 많은 정서적 정신적 신체질환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는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공격적이며 모두가 감정조절이 안 되는 분노조절장애에 빠진 듯 보인다. 우울감 좌절감에 쉽게 삶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지극히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결국, 우리가 가치 있게 여겨오던 것들이 희박해지고 우리가 그토록 믿고 의지해오던 문명과 과학이, 정부와 시스템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과 상실감에 혼란스러워한다.

의료인들이라고 왜 코로나가 두렵지 않겠는가? 히즈메디 병원도 지난해 코로나가 발병하자마자 일찍부터 코로나 환자를 선별하는 선별검사소를 세우고, 안심병원부터 호흡기 전담클리닉까지 정부의 방역대응에 발맞추어왔다. 지역사회의 보건과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왔지만 그런 병원의 모습을 격려하고 지지해주기보다는 괜히 히즈메디 가면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며 병원 진료를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외롭고 힘겨워도 누군가는 마땅히 책임지고 헌신해야 한다는 소명감 때문에 시작한 길이었다. 

정작 호흡기 질환을 진료해야 할 의료진들은 어땠을까. 임신한 아내가 있었고, 나이 어린 자녀가 있었고, 의사라고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 누구라도 선뜻 호흡기 진료를 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 의료진들이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병원에 등을 돌렸던 환자들도 조금씩 발길을 되돌리고, 직원들 역시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모습을 보며 큰 위로와 기쁨을 맛본다. 여름 무더위 속, 몇 시간만 지나도 속옷까지 흠뻑 젖어버리는 방호복을 뒤집어 쓴 의료진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끔씩 전해지는 따스한 한 마디, 이곳저곳에서 보내는 아이스크림과 작은 선물들은 사소한 듯하지만 큰 감동을 안겨준다.

2차 세계대전이 있던 어느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소대가 적을 피해 은신해 있었다. 각자가 가진 수통의 물이 이미 다 떨어진 시간, 소대장이 차고 있던 수통의 마지막 물을 소대장은 기꺼이 부대원들에게 건네준다. 저마다 목숨을 부지할 생명수 같은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또 옆 동료에게 수통을 건넨다. 10명 남짓 수통이 돌고 다시 소대장의 손에 수통이 돌아왔을 때, 소대장은 입을 축이려 수통에 입을 대는 순간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10명이나 되는 부대원들의 입을 거쳐 돌아온 수통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 날 그 누구도 그 물을 마신 사람이 없었지만, 그 소대원 모두는 누구도 목마르지 않았다. 
 
어느 한 소년의 손에 들린 자신의 점심 도시락이었던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기꺼이 내놓았을 때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 배부름을 누린 사건처럼 우리의 과학과 지식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기적은 이렇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은 누군가 한 사람의 작은 헌신과 베풂과 나눔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해보다 힘들었을 지난해 사랑의 열매가 설정한 목표액을 훨씬 뛰어넘어 온도탑 100도를 넘길 뿐 아니라 연간 모금액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우리 모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처럼 지금 도무지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19를 지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보다 먼저 남을 살피고 베풀고 섬기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돈이 없어 베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없어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적 손수레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꼭 뒤에서 몰래 다가가 손수레를 함께 밀어드리던 기억, 버스에 앉으면 무릎 위에 몇 개라도 곁에 서 있는 이들의 가방을 맡아주던 기억, 어르신이 다가오면 기꺼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던 기억은 비단 나만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내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된 지금 나는 또 누군가 그 작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작은 마음들을 흘려보내려 한다.

‘나’라는 존재는 결코 ‘나’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나를 향해 서 있는 ‘너’를 통해 나와 같이 어깨를 마주한 ‘우리’를 통해 나아가 나를 낳아주시고 나를 나로 자라게 하신 나의 아버지 세대와 또 그 아버지 세대. 결국,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홀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불어 함께 가야 한다. 내가 가진 그 어떤 소유도 결코 내 것이 아니다. 내 재능도 내 지식도 내 경험도 모두 이 사회와 이 땅의 모든 이웃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무리 우리를 짓누른다 해도 결코 우리가 무너지고 또 망하지 않을 것은, 지금도 홀로 묵묵히 맡겨진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가며 작은 선행을 자랑하지 않으며, 그저 내가 마땅히 할 바를 한 것뿐이라 말하며 하루의 삶을 하루로 살아내는 이름 없는 무수한 ‘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진료실 문을 활짝 열고 마스크로 가려진 채 미소 지으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방호복에 땀범벅인 글러브를 낀 채 힘겨운 호흡을 내 뿜는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없었다면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스쳐 보내버렸을, 수많은 작은 기쁨들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통해 희망찬 내일을 그려본다. 

유현수  히즈메디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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