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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무서워하는 부모, 실패를 기다려주는 부모양성희의 교육칼럼

장자는 포정이라는 백정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즉흥성, 즉 ‘훈련된 즉흥성’을 강조한다. 포정에게 있어 늘 고기를 썰어야 하는 일상은 지루함과 익숙함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정은 그 지루함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 고기를 자르는 하찮은 행위를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까지 계속 반복했고, 또 반복할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소의 상태를 감지하며 동시에 ‘도’를 감지했다. 장자가 말한 단순한 ‘재주technique가 아닌 우월한 도’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포정에게 있어 고기를 자르는 일은 더 이상 하찮은 일도 단순한 행위도 아니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과 즉흥성의 발견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다. 어떠한 소든 그의 손에 닿으면 춤을 추듯 완벽한 리듬으로, 그의 칼날 앞에 힘없이 툭 떨어졌다.

장자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극성 어머니들에게 이미 장자식 교육법은 빛을 발하고 있다. 적어도 겉모양은 그럴싸해 보인다.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만이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결코 포기함이 없다. 혹 그 반복된 훈련 속에서 자녀의 영재성을 발견하고 길을 열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장자가 말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지속된 훈련 속에서, 때로는 너무도 지루한 일상과도 같은 반복성에서 만족감과 희열을 느낄 때까지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있냐는 것이다. 훈련의 처음과 끝을 부모가 혹은 교사가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한계성을 정해놓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닌지, 결국 어느 것 하나 건지지 못하고,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루해질 때까지 정말 하기 싫을 때까지 때로는 올라갈 때까지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는 낭패감과 실패를 맛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이 그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반복된 훈련의 끝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타오르는 쾌감과 열정을 스스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불행하다. 아이들 대신 선택권을 가졌다는 것 이유 하나로 부모는 아이들의 처음과 끝을 정해버린다. 아이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희열을 느끼는지는 관심이 없다. 혹여 시작은 부모가 했을지라도 더 하고 싶고 더 빠져들고 싶은 욕구를 무시해버린다. 부모가 정해놓은 시간과 반복과 결론에만 복종해야만 한다. 다시 생각해보자. 아이들의 감정과 사고, 상황까지도 부모가 대신 정의 내려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무반응해질 것이다. 겉으로는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 같지만 더 이상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그냥 공부하고 그냥 놀고 그냥 먹고 그냥 잠 자는..

아이들의 오감이 작동하는 곳에 우리 아이들을 내려주자. 스스로 만지고 깨지고 부수어지도록,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반복과 반복을 거듭해 얻어낸 장자의 만족성처럼, 때로 허탈과 실패 속에서 저 깊은 바닥의 느낌까지 그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주자. 아이들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구출해주지 말자. 다른 아이들이 먼저 도착지에 다다를까 조바심도 내지 말자. 그냥 우리 아이들이 실패할 때까지, 그 안에서 몸부림치듯 아우성칠 때까지 딱 한 번이라도 기다려줘 보자.

양성희 

한강국제크리스천학교 교장

사단법인 성문청소년사랑 이사

양성희  webmas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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